CHAPTER 03
동북아 교류의 관문, '내상'과 왜관의 시대
조선 시대 부산은 일본과의 유일한 공식 접점인 왜관(倭館)을 중심으로 경제와 외교가 꽃피었던 곳입니다.
- 한일 교류의 허브 동래구와 중구 일대에 설치된 왜관을 통해 일본의 은과 조선의 인삼, 중국의 비단이 오갔습니다.
- 경제적 주역,내상 동래 상인들을 일컫는 '내상'은 이 국제 무역을 독점하며 조선 최대의 거상으로 성장했습니다.
- 초량 왜관의 풍경 당시 초량(지금의 남포동·광복동 일대)은 수백 명의 일본인이 거주하며 일본 문화와 조선 문화가 공존하던 독특한 구역이었습니다.
CHAPTER 04
대륙 진출의 교두보와 수탈의 아픔 (일제강점기)
이 시기의 부산은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이자, 물자를 실어 나르는 거대 항만 도시로 확장되었습니다..
- 부산역과 경부선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부산은 '배'와 '기차'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습니다. 부산항에서 내린 물자와 사람이 기차를 타고 만주까지 연결되는 구조였죠.
- 매축지와 공업화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히는 매축 공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자리에는 방직 공장과 고무 공장 등이 들어서며 근대적인 산업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 그림자, 영도다리와 산복도로 1934년 개통된 영도대교(도개교)는 당시 동양 최대의 기술력을 자랑했지만, 동시에 징용과 이별의 아픔이 서린 장소였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이 산비탈에 집을 지으며 오늘날 부산 특유의 산복도로 풍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사이트 방문하기